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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북뉴스

9. 기생의 법칙 :기방오불(妓房五不)

기생

 

은 천민입니다. 신분구조가 철저한 조선 사회에서 기생은 남자들의 장난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그런데 이런 기생집에서도 지켜줘야 할 다섯 가지가 있었으니 그게 기방오불이라는 것입니다. 기방오불을 어긴 사람은 벗겨져 쫓겨나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하소연을 한들 비웃음만 당하지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되었지요
.

그 첫 번째가 ‘기생 맹세는 믿을 게 아니다’입니다. 기생이란 본디 여러 남자들을 만나는데다 기생으로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만나는 사람은 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여자가 남자 유혹하는 비결이 많다 보니 시쳇말로 남자를 훅~가게 해서 정말로 남자가 기생을 사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남자를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거죠. 명성 높은 기생의 경우 얼마나 퀄리티가 높고 기술이 뛰어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순진한 양반님들이 기생 한 번 봤다가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보통 그런 손님은 바로 ‘봉’입니다. 봉에게 뭔들 못하겠어요. 충주 기생 금란의 경우 그녀를 사랑한 양반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전목이라는 이 사람은 금란이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고 남에게 몸을 허락하지 말고 일편단심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금란은 “월악산이 무너진들 내 마음은 변치 않소.”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걸 철떡 같이 믿고 한양에 올라갑니다만 올라가자마자 들려오는 소식은 금란이 딴 남정네와 놀아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전목은 편지를 보내 배신한 것을 따집니다만 금란은 이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맹세한 것처럼 산이 무너진다면 월악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무너졌을까요?”라고 말하지요.

두 번째는 ‘기방에는 꽃을 들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는 건 예로부터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방에는 꽃을 들고 가면 안 되는 이유는 기생 자체가 해어화라 하여 꽃에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그 기생 앞에 꽃을 들고 가면 그 꽃과 기생을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니 기생들이 싫어하는 것이지요.

사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꽃은 어디까지나 선물을 싸는 포장(?)이고 선물이 가득하다면야 못 받을 이유야 없겠지만 꽃만으로 뭘 어찌 해보려는 한량들은 결국 자신이 하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꽃은 어디까지나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세 번째는 처첩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생이 남자 붙들고 아양 떠는 것이 일이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 집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리숙하게 자기 집 여자 이야기를 하는 양반들이 있는데, 신분 사회에서 제대로 된 정실로 들어갈 수 없는 기생 신분에 잘해야 노기가 될 때 남의 집 첩으로 들어가 골방살이 해야 하는 기생 앞에서 자기 집 여자들 이야기하면 그게 좋게 들릴 리가 있나요. 또 이야기하게 되지만 지금도 여자들 만나러 가서 딴 여자, 옛날 여자 이야기 하면 따귀 맞을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원하는 거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애틋한 남자를 원하는 게 아니니까요. 애당초 그런 남자가 기방에 출입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는 합니다만.



네 번째는 기방에서 문자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생집은 술 마시고 여자와 노는 곳입니다. 수준 맞춰준다고 기생도 각종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한 사람에 비한다면 한참 아래인데 술 마시면서 시와 음악을 즐길 정도의 수준으로 분위기를 띄우면 그만이지 거기서 학문 토론할 일 있나요? 요즘 미팅 자리에 나가서 할 말이 없어 군대 축구 이야기를 하거나 전공과목 이야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문자 자랑이었습니다.

거기다 가끔 잘못 걸리면 황진이나 매창 같은 수준 높은 기생에게 걸려 망신만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공부만 한 샌님들은 공부 방면에서 잘 나갈지 모르겠지만 고급 기생쯤 되면 센스도 장난 아니거든요?

기생에게 망신당한 아전 이야기가 있는데, 나라에 경사가 있어 기생이 동원되었는데 한창 흥이 나는 와중에 아전 하나가 농담 삼아 기생 얼굴의 주근깨를 보고, “네 얼굴에 주근깨를 짜내면 기름이 한말은 나오겠구나.”라고 놀렸죠. 그러자 이 기생이 아전의 얼굴에 얽은 자국을 두고 “나리 면상에는 벌집이 많으니 그 꿀을 따면 꿀섬이 나오겠소.”라고 해버립니다. 그러자 좌중은 박장대소… 아전은 얼굴이 벌게지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다섯 번째는 기생 앞에서 효녀, 열녀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거야 뭐… 더 말할 필요가 있나요? 이 남자 저 남자 상대하는 기생을 앞에 두고 열녀, 효녀 자랑하면 어쩌라고요! 아무리 낮은 곳이고, 천민이라도 지켜줘야 할 법도는 있는 법이랍니다.
  
 
[역사/문화]  조선의 속사정
권우현 | 원고지와만년필
2013.04.15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 '조선의 속사정'
조선시대에도 출산휴가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만우절이? 예나 지금이나 술이 문제였다고? 애연자와 혐연자의 담배논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노비에서 왕까지, 조선을 이루었던 모든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진정한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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